HL5KY & HL5BTF Amateur Radio

2021. 10. 20일 작성

이 이야기는 HAM을 통한 아름다운 인연에 관한 실화입니다.

(KARL지 2021년 11/12월호에 게재)

 

HL5BTF와 VK4BTF의 소중한 인연

글. HL5KY.

 

​Bernie는 1929년 네덜란드 노르트홀란드주의 서쪽 도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의 무역 중심지가 하를럼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면서, 하를럼은 과거의 찬란함을 찾아볼 수 없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더구나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네덜란드의 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하를럼의 주민들은 가난했고 Bernie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그는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대공황의 여파가 채 끝나기도 전인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Bernie가 만 11세가 되던 해인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프랑스 공격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침공하며 네덜란드 또한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전쟁 8일 만에 완전 항복을 선언하며 독일의 식민지가 된다. 사회와 경제는 더욱 어두워졌고 갈수록 심해지는 독일의 수탈은 전 국민의 생계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온 유럽을 발아래에 놓을 것만 같았던 독일이 결국 연합국에 패배하며 1945년 5월 8일 전쟁이 끝난다. 그리고 종전으로부터 4일 뒤, Bernie는 16세의 나이로 조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향한다. 가진 게 없는 외국인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흔히 말하는 3D 업종뿐이었기에, Bernie는 스웨덴의 저소득층조차 힘들어하는 국제 해운회사 하역부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거친 바다 위에서의 선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일을 못하거나 실수 때문에 혼나는 일은 예사였고 때로는 폭풍우를 만나 배가 가라앉거나, 암초에 부딪히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성인도 견디기 힘든 생활 속에, 함께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으나 Bernie는 묵묵히 견뎠다. 마침내 경력을 인정받은 그는 하역부에서 기관실의 배관설비 보조공으로 일하게 된다.

 

기관실에서의 일은 잡역인 하역부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Bernie는 배관은커녕 기계설비 이론조차 배운 적이 없었기에 더 큰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성격과, 기술을 배워 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기관실 생활을 버텨냈고, 이와 비례해 그의 경력과 기술, 급여는 날로 늘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입사 4년 차가 되는 1949년, 그는 만 20세의 성년이 되었고 장거리를 운항하는 무역선에 승선하게 된다. 주요 운항지는 일본 홋카이도 남단의 항구도시 하코다테였다. 하코다테는 무역항이었던 만큼 선원, 특히 외국인 선원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서양 및 북유럽 음식점 거리가 있었다. 그중 한 곳을 즐겨 가던 Bernie는 식당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김윤희(Yuni Kim)와 자주 만나게 되고, 서로 많은 대화와 감정을 주고받은 끝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라온 환경은 달랐지만, 나라를 잃은 아픔을 겪고, 가족과 떨어져 타국에서 홀로 외롭게 생활해 온 두 사람에게는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무게와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Bernie의 항해 일정 때문에 일본에 계속 머무를 수 없었고 만나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장애가 될 수 없었으며 감정은 오히려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채 피기도 전에 Bernie의 항해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경되었고, 기다리던 김윤희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서 하코다테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다시 혼자가 된 Bernie는 선원 생활을 이어가던 중 새로운 기회를 찾아 호주 이민을 결심한다. 그리고 1956년, 호주로 간 그는 보일러 메이커(제관공)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호주는 넓은 국토를 가졌으나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 무선통신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Bernie 또한 업무적 효율성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선통신을 사용하였다. 업무로만 무선통신을 사용하던 그는 점점 재미를 붙여 1986년에는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여 VK4VJY로 아마추어무선국을 개설하였다.

 

VK4VJY, Bernie의 무선실

 

​비슷한 시기에, 대한민국에서는 또 다른 김윤희가 아마추어무선을 즐기고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학습자료를 빌리기 위해 선배를 찾아간 곳이 아마추어무선 동아리실이었고, 여기서 처음으로 아마추어무선을 접하게 되었다. 미지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이 마법과 같은 취미에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점차 아마추어무선의 매력에 빠지게 된 김윤희는 1985년 가을,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자격을 취득하여 부산대학교 클럽국인 HL0M에서 교신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동아리실로 왔고,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동아리실에서 교신을 즐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언젠가 주말에 혼자 나와서 교신을 하다가 무전기가 고장이 나서 교신이 중단되었다. 기술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선배들이 퓨즈를 교체하여 간단히 수리하는 것을 보고, 그 후에는 가방에 퓨즈를 챙겨 다니면서 고장이 나면 직접 퓨즈를 교체하여 교신을 이어가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1986년의 봄 어느 날, 김윤희는 여느 때처럼 21MHz에서 CQ를 내고 있었다.

 

김윤희: “CQ CQ CQ This is HL0M, Hotel Lima Zero Mike. HL0M calling CQ and standing by.”

 

​무전기의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던 Bernie가 김윤희의 CQ를 듣게 된다.

‘한국의 무선국이군. 게다가 YL이라니...’

Bernie는 얼른 송신 준비를 하고 호출한다.

 

Bernie: “HL0M, HL0M. This is VK4VJY, Victor Kilo Four Victor Juliet Yankee, over”

 

김윤희: “Ok, VK4VJY this is HL0M. Thank you very much for the call. Your signal is five and seven. 57. Very nice signal into Korea. My QTH is Pusan, Papa Uniform Sierra Alfa November. Pusan, Korea is my QTH. Name here is Yuni, Yankee Uniform November India, Yuni is my name. Back to you. VK4VJY this is HL0M.”

​“VK4VJY 여기는 HL0M. 당신의 신호는 57입니다. 여기는 한국의 부산입니다. 이름은 Yuni입니다. 마이크 받으세요. 오버”

이것을 들은 Bernie는 깜짝 놀란다.

‘Yuni라니.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윤희와 이름이 같지 않은가.’

 

Bernie: “Very good, Yuni. What is your full name?”

​“잘 알았습니다, Yuni. 그런데 당신의 full name은 무엇입니까?”

 

김윤희: “My full name is Yuni Kim. Kilo India Mike. Yuni Kim.”

​“저의 이름은 김윤희입니다”

 

Bernie: “Oh my goodness. Yuni, Yuni Kim. What a surprise! I can’t believe it.”

​‘아니, 김윤희라고. 그녀와 이름이 같지 않은가. 이럴 수가...‘

 

​김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던 Bernie는 또 한번 놀란다.

​’그녀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젊어. 그렇다면 혹시 그녀의 가족인가.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나...‘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교신은 계속 이어지고, 두 사람은 다시 교신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시작된 Bernie와 김윤희의 교신은 정기적인 스케쥴 교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Bernie는 네덜란드어로 할아버지란 뜻의 “Opa”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면서 자신을 Opa라고 부르라고 한다. 전파상태도 좋았지만 양쪽 모두 빔안테나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깨끗한 신호로 교신이 이루어졌다. 21.155MHz에서 이루어진 스케쥴 교신은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에 있는 많은 햄과 SWL들이 시간을 맞추어서 수신하고 리포트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 당시에 부산의 공식적인 영문표기법은 Pusan이었다.
▶ SWL은 단파청취자(Short Wave Listener)를 말하며, 주로 아마추어무선사들의 교신을 수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SWL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무선통신에 대한 지식 및 통신술을 습득할 수 있으므로 햄이 되기 전에 필히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일반적으로 수개월에서 수년간의 SWL 기간을 거치는데, 평생 SWL로만 머무는 사람들도 있다.

 

교신뿐만 아니라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기도 하고 선물을 보내기도 하였다. 김윤희는 한국 인형이나 장식품을 보냈고, Bernie는 호주의 원주민 기념품 등을 보내주었다. Bernie는 워낙 악필이어서 편지보다는 주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보내주었는데, 지금까지 김윤희가 받은 테이프의 수는 이백여 개가 넘는다.

한국 인형으로 장식된 Bernie의 방

 

이렇게 계속된 교신은 어느덧 한 해를 넘어, 김윤희는 졸업을 1년 가량 앞두고 있었다.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학교 클럽국에서 교신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개인국을 개설하기에는 기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김윤희는 Bernie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교신은 자주 할 수 없지만 편지와 함께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을 하여 계속 소식을 전하겠다고 얘기하였다.

 

​Bernie에게는 김윤희와의 교신이 가장 기다려지는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는데, 교신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소식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한 Bernie는 김윤희가 개인무선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무전기 세트와 빔안테나를 구입하여 보내주기로 하였다. TS-520이라는 무전기와 안테나튜너, 외부스피커, 외부VFO 그리고 디지털 디스플레이까지 한 세트였다. 당시에는 가격도 비쌌고 국내에서는 구하기도 쉽지 않은 장비였다. Bernie뿐만 아니라 자주 교신했던 VK5YM은 안테나지지용 베어링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TS-520 세트

 

김윤희는 혼자서 광안리에 있는 국제우체국에서 무전기 세트를 택시에 실어 오고, 별도로 도착한 안테나는 용당세관에서 받아 왔다. 안테나가 커서 혼자서 운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세금을 내라는 말에 학생에게 선물한 것인데 무슨 세금이냐고 울면서 하소연하여 겨우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아마추어무선사로 교신은 해 왔지만 기술적인 내용은 잘 몰랐기 때문에 무전기와 안테나를 어떻게 설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부산에서 함께 활동했던 HL5BCW, HL5BEF, HL5BUC 등 몇몇 햄들의 도움으로 안테나를 세우고 무전기를 설치할 수 있었으며, 개인무선국을 신청하여 HL5BTF라는 호출부호를 받았다.

빔안테나

그때부터는 집에서 편하게 스케쥴 교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와 교신하면서 더욱 다양한 햄생활을 이어나갔다. 얼마 후 대학교를 졸업한 김윤희는 교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로 계속 발령이 지연되었다. 발령까지의 대기시간은 햄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88년 올림픽에서 요트경기의 통신지원 및 VIP 통역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자주 교신하며 친분을 쌓았던 일본 친구들의 초청으로 경험한 한 달간의 일본 여행은 햄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HL5MK님의 소개로 부산의 일본영사관에서 첫 직장생활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 Bernie가 사는 호주로 유학을 결심하고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김윤희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 선배인 HL5KY와 교신하게 되었다. 김윤희는 HL0M에서 함께 활동한 동기들과 매주 한번씩 스케쥴 교신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HL5KY가 김윤희의 동기인 HL5BCT의 집에 방문하여 교신이 이루어졌다. 얼마 후 알래스카에서 김윤희를 방문한 AL7JF, Marty의 관광 안내를 위해서 HL5KY가 운전을 해 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무르익어 1990년 봄,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때 김윤희는 교사로서의 생활도 시작하였다. 이제 막 시작한 직장과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로 바쁜 생활이었지만 Bernie와의 스케쥴 교신은 계속 이루어졌다.

 

​한편, 호주의 Bernie는 가정불화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되돌아보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고 가족과 헤어져서 홀로 타국에서 떠돌다가 겨우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맛보게 되었는데, 또다시 가족을 잃게 되자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한동안 교신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김윤희와는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였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김윤희뿐이고, 오직 김윤희만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전 재산을 김윤희에게 상속하기로 하고 유언장을 작성하였다. 또한 김윤희가 호주에 방문하였을 때, Bernie는 자신이 아끼던 오팔 원석 8개를 선물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다.

 

 

유언장

Bernie의 집에 방문한 김윤희

 

시간이 흘러 각자의 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가고 원활하게 스케쥴 교신을 이어가던 1994년 말, Bernie가 갑자기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하였다. 두 사람 모두 직장에 나가고 있고 방이 2개뿐인 작은 아파트에 사는 형편이어서 방학기간에 방문하기를 원하였으나 Bernie는 굳이 지금 방문하여야 된다고 하며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Bernie는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였다. 자신은 그동안 전립선 문제로 큰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의료진은 전립선암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만약 암이 아니고 다른 문제라면 치료할 수 있지만 암이라면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고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딸과 같은 김윤희를 마지막으로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으며, 만약 한국에 머무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였다고 하며 보험증서를 보여 주었다.

 

​당시에 호주의 전립선암 전문병원에는 환자가 상당히 많았고, 전립선암의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6개월 이상 생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전립선암은 서양인들에게 무서운 병이었다.

 

김윤희의 딸과 Bernie

 

Bernie는 약 두 달을 머무는 동안 차츰 한국 생활에 익숙해져서, 두 사람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혼자서 동네 노인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며 즐겁게 지냈지만 걷는 모습은 하루하루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HL0M 방문

 

이때 김윤희의 시아버님이, 부모님과 같은 분이니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가족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식사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Bernie의 건강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Bernie가 전립선이 좋지 않다고 얘기하자, 오랫동안 건강식품관련업을 하였던 시아버님은 전립선에 좋은 약이 있다며, 꽃가루를 권하였다. 서양인들은 동양의 약제에는 신비한 효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Bernie는 바로 먹어보겠다고 하였다.

 

​마침 집에 꽃가루가 있어서 그날부터 바로 먹기 시작하였다. 약 일주일간 복용한 어느날 아침 일찍, Bernie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동안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법 연속적으로 소변을 보게 되었다고 하며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기쁜 일이긴 하지만 한편 플라시보 효과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다행히 효과는 생각보다 좋아서, 시간이 갈수록 걷는 모습도 나아지고 소변 상태도 좋아져서 호주로 돌아갈 즈음에는 거의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호주로 가기 전에 꽃가루를 2통 준비하여 주었다.

 

​호주로 돌아가서 병원 진료를 갔을 때, Bernie의 건강 상태를 살펴본 의사들이 모두 놀라며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꽃가루 얘기를 해 주었더니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꽃가루를 얻으려 난리였다고 한다.

 

​가져간 2통을 다 먹고 나서도 다시 더 보내주려고 하였으나 호주는 동식물에 대한 검역이 워낙 까다로워서 소포로는 보낼 수가 없고, 인편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 아시아나항공이 케언즈로 운항하고 있었는데, 케언즈는 다소 검역이 소홀하였기 때문에 이곳을 통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마침 HL5UMO님이 호주로 여행을 한다고 하여, 케언즈로 들어가서 꽃가루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케언즈에서 퀸즈랜드주 남쪽까지는 육로로 1500km정도가 되는 길이었는데도 흔쾌히 먼 길을 버스로 이동하는 수고를 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꽂가루는 한국산이 아니고 뉴질랜드에서 수입한 제품이었다. 어떻든 Bernie는 그 이후 더 이상 병원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다.

 

​199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태양흑점지수가 낮아지고 이와 함께 전파상태도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김윤희가 사는 곳은 HF대의 노이즈가 많아서 때때로 Bernie의 신호가 노이즈에 묻히기도 하였다. 그때까지 Bernie는 Novice급이었기 때문에 출력을 크게 낼 수 없었고 골든 밴드인 14MHz 대역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골든 밴드 : HF의 밴드 중에서 14MHz는 태양흑점지수가 다소 낮은 시기에도 원거리 교신이 잘 되기 때문에 골든 밴드라고 한다. 대개 상위 급수의 자격 취득자만 사용할 수 있다. 원거리 교신이 원활하기 때문에 평생 14MHz만 사용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중 VK3MO는 5el 4스텍 (20el) 안테나를 사용하여 14MHz만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력을 높이고 여러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위급의 자격이 필요했는데, 호주의 시험은 문제은행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Bernie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김윤희와의 원활한 교신을 위해서, 그는 늦은 나이에 모오스도 공부하고 어려운 무선공학도 공부하여 1995년에 호주의 최고급수인 Unrestricted license를 취득하였다. 또한 김윤희의 호출부호와 같은 서픽스인 BTF를 얻기 위해서, 이미 이 호출부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몇 번이나 찾아가서 통사정을 하여 호출부호를 양보받기까지 하였다. 호출부호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적인 절차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VK4BTF라는 호출부호를 받게 되었다.

 

리니어앰프가 놓여 있는 Bernie의 무선실

 

그전에는 Bernie가 보내준 무전기와 안테나 덕분에 김윤희가 개인무선국을 개설할 수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그에 대한 보답과 축하의 의미로 우리가 리니어앰프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너무 무거워서 별도의 박스도 제작해야 했고 송료도 비싸서 경제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Bernie도 리니어앰프를 받고 너무나 기뻐했으며 그의 신호도 강력해져서 더욱 안정하게 교신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신문에 게재된 Bernie의 이야기

 

그 후 Bernie는 재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고, 아마추어무선 활동도 더욱 활발하게 하여 여러 개의 지역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게재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로 HF대의 교신이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인터넷의 발달로 서로 간의 소통은 전보다 편리해졌다. 안타깝게도 Bernie는 2020년에 SK하여 이제 더 이상 그의 신호를 들을 수 없다. 아마추어무선과 함께 이어온 소중한 만남이 많이 있었지만, Bernie와의 만남 또한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으며 함께 쌓은 순간들 또한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SK : Silent Key의 약자로 돌아가신 햄을 뜻한다. 다른 뜻으로, 전신교신을 마칠 때 마지막에 S와 K를 붙여서 송신하는 것은 교신을 종료한다는 의미이다.

 

아마추어무선은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즐기는 취미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지만, 김윤희의 경우에는 기술에 대한 흥미보다 사람들과의 교류에 더욱 관심이 많았고, 아마추어무선을 통해서 전 세계의 많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교신할 때는 17살이었던 독일의 DL9LBD, 마이클과는 정기적인 교신뿐만 아니라 많은 편지도 교환하였다. 결혼한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였고, 2012년에는 독일에 방문하여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의 딸을 둔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일본의 JJ3GNR, 게이코상은 다정한 언니같은 햄이다. 여러 가지 언어에도 관심이 있어서 교신을 통하여 함께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교신보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 연락을 하고 때때로 서로 방문하면서 계속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DJ6EA, ZL1SN, VK3AZN은 언제 방문해도 환영해 주는 가족과 같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김윤희를 한국의 여자친구라고 부르며 즐거운 교신을 나눈 ZS2ABC, 은하수가 보이는 언덕위의 집에 살았던 ZL1AIF,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일본계 미국인 WA6FPK, 부모님과 같이 다정하게 반겨주던 VK2AHJ 부부,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인과 결혼한 VK2CCK, 미국 연수때 동료들과 함께 만났을때 멋진 식사를 대접해 준 KB6TJX는 매너도 너무 좋아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 외에, VK5YM, N6POP, VK4ADZ, ZL2AOH 등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그들의 가족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아마추어무선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람과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 즐기지만 외롭지 않은 취미. 상대가 있어야 완전해지는 취미. 무전기라는 쇳덩이를 만지지만 결국 사람과 함께하는 취미, 이것이 아마추어무선이다. CQ를 시작으로 새롭게 이루어지는 만남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Bernie를, 누군가의 김윤희를 꿈꾸며 PTT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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